바람둥이 영국왕이 콘돔을 만들다

영국 귀족들의 대표적인 해안 휴양도시 브라이튼(Brighton).

조지 4세의 세기적인 불륜이 일어난 곳이기도 한 브라이튼이 영국 방문 첫 행선지였습니다.
런던에서 남쪽으로 약 1시간 거리이니 한국으로 치면 제부도 정도쯤 되겠네요.



사실 2년마다 열리는 브라이튼 비엔날레 사진전을 감상하러 갔다가 5개의 사진전 중 하나가 바로 조지 4세의 밀애장소였던 로얄 파빌리온 옆 브라이튼 갤러리에서 열렸습니다.
(사진전 감상 및 런던, 파리의 언론사 방문이 목적이라 이전처럼 관광명소를 꼼꼼히 훑지는 못했고 잠깐씩 짬을 내 영국문화를 맛 볼 수 있었습니다. 사진전 이야기는 천천히 소개하겠습니다.)

 



런던 아니랄까봐 아침부터 종일 비가 내리는 궁상 날씨가 이어졌습니다.

비를 뚫고 도착한 브라이튼 중심가엔 세기의 바람둥이 조지4세 동상이 자리 잡고 있었죠.



왕세자 시절부터 소행이 매우 나빴던 조지4세는 주색과 낭비벽으로 왕실 비용의 반에 해당하는 670만 파운드의 빚을 지며 방탕한 생활을 합니다. 아버지인 조지3세와 사이가 좋을 수 없었죠.
게다가 조지4세는 브라이튼에 놀러갔다가 이혼녀와 눈이 맞아 바람이 납니다.

영국왕실은 이혼녀와 혼인을 하면 왕이 될 수가 없습니다.(엘리자베스 여왕이 세상을 떠나도 찰스황태자가 왕위를 계승하긴 함들 거라 여겨지는 근거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혼녀와 불륜으로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영국 왕이 딱 세 명이 있네요.
에드워드 8세라는 왕위 대신 사랑을 선택한 심슨 부인의 남편 윈저공.
조지 4세, 그리고 현재 영국의 왕세자인 찰스황태자입니다.

농부왕 조지 3세

암튼 아버지인 조지3세는 정신질환을 앓아 미래가 걱정되기에 아들 조지4세를 어르기 시작합니다. “네 빚 다 갚아줄 테니 이혼녀랑은 헤어져라”라고요.

말 들을 조지 4세가 아니었죠.

로얄 파빌리온

얼짱 이혼녀에 쏙 빠진 조지4세는 한 술 더 떠 브라이튼에 밀애장소를 궁궐처럼 지어놓은 후 런던과 브라이튼의 로얄 파빌리온을 오가며 불장난을 계속합니다.

그 행동이 아버지를 뒤집어 놓았을까요?
결국 1810년 조지 3세가 정신이상자가 되자 조지4세는 왕세자로 섭정을 맡아보게 됩니다. 영국은 왕이 사망하기 전까지는 왕위 계승을 할 수 없기 때문이죠.

왜 ‘골골 백년’이라는 말이 있죠.

조지 3세는 정신병에 걸리고도 10년을 더 살았습니다. 그의 재위기간은 60년으로 64년 동안 재위한 빅토리아에 뒤이어 영국 군주 중 두 번째로 깁니다.

그럼 이때 이혼녀와 혼인하면 왕이 될 수 없는 조지4세의 선택은?

안면몰수.
브라이튼 얼짱 이혼녀를 차버립니다.(나쁜 넘)



생긴 것도 딱 바람둥이죠?

프랑스와 바다 하나 사이를 두고 있는 브라이튼 비치를 바라보자니 조지4세가 벌였을 사랑의 물장구 놀이가 떠오르더군요.
거참 한세월 사랑놀이 좋았겠어요.~~



이번엔 200년 정도 거슬러 올라갑니다.

헨리 8세와 쌍벽을 이루는 바람둥이 찰스 2세 이야기입니다.

찰스 2세


아버지 찰스 1세가 크롬웰에 의해 처형을 당하는 황당무계한 쿠데타를 겪은 찰스 2세.

그의 절치부심은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올리버 크롬웰의 집요한 추격에 찰스 2세는 어머니의 나라 프랑스로 피신했다가 크롬웰이 사망하자 곧바로 귀국해 공화국을 박살냅니다. 이후 국립묘지에 있는 크롬웰의 시신을 꺼내 부관참시, 해골을 도끼와 돌로 으깬 후 궁전 밖에다 걸어놓아 왕권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올리버 크롬웰

300백 년 이상을 축구공 노릇을 하며 떠돌던 크롬웰의 머리는 1960년이 되어서야 그의 모교인 캠브리지에 묻힙니다. (크롬웰의 반역 때문에 지금도 영국 육군 앞에는 로얄이 붙지 않습니다.)

영국 해군-Royal Navy, 영국 공군-Royal Air Force, 영국 육군-British Army,

에고, 옆길로 너무 샜네요.

아무튼 찰스 2세의 호색행각은 아무도 말릴 수가 없었습니다.
좀 반반하고 치마만 둘렀으면 자빠뜨릴 궁리에 여념이 없었죠.

(찰스 2세의 사랑을 듬뿍 받은 정부인데 이름이 기억 안 나네요. 암튼 찰스 2세 때문에 성병에 걸려 고생이 심했습니다.)

야사에는 찰스 2세의 정부가 90명에 이른다고 전합니다.

상태가 이지경이니 왕의 주치의가 얼마나 노심초사했을까요.
특히 문란한 성생활에 의한 성병을 먹기 위해 갖은 수단을 다 동원합니다. 이집트에서 시도했던 온갖 동물의 내장을 이용해 옥근을 감싸는 기구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죠.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오늘날의 콘돔입니다.



왜 이름이 콘돔(Comdom)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찰스 2세의 주치의 이름이 콘돔이었기 때문입니다.
닥터 콘돔.

그러나 닥터 콘돔의 노고에도 불구하고 찰스 2세는 결국 매독에 걸려 죽게 됩니다.

에혀, 그래도 왕이라고 이런 말을 남기고 갔습니다.

“음,,,,약간의 타락은 하나님도 이해해 주실 것이다.”



어쨌든 콘돔을 만들게 했으니 후세의 성생활에 공헌을 한 거로 봐야 하나요? ^^

 

출처: 둔필승총 (http://dunpil.joins.com/536)

2011/01/19 17:36 2011/01/19 17:36

http://www.ilovebururu.kr/trackback/286

댓글을 남겨주세요

[로그인][오픈아이디란?]

Name *

Password *

Link (Your Homepage or Blog)

Comment

Secret